블로그

  • 일단 올린다

    일단 올린다

    완벽한 글을 쓰려다가 아무것도 못 쓴다는 걸 열다섯 번째 깨달았다.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쓰고 읽고 지우고 다시 쓰고 읽고 또 지운다. “한 번만 더 읽어보고” 올려야지 한다. 읽는다. 고친다. 또 읽는다. 또 고친다. 나아진 게 아니라 달라진 거다. 30분 전 버전이 나은 건지 지금 버전이 나은 건지 모른다. 저장을 안 했다.

    이걸 몇 년 했다. 블로그 시작하고 싶다고 말만 했다. 초안만 쌓였다. 발행한 건 없었다. 계획만 세우다 하루가 끝나는 게 글쓰기에서도 똑같다.

    데이터베이스만 완벽한 사람

    Notion에 “블로그 글감” 데이터베이스가 있다. 항목이 47개다. 상태가 “아이디어” 단계인 게 41개. “초안 작성 중”이 4개. “완료”가 2개. 완료된 2개도 읽어보니까 마음에 안 들어서 결국 안 올렸다. 데이터베이스만 완벽하다.

    MIN’s Blog. 이름 창의적이지 않다. 이름 짓는 데 3시간 쓰고 결국 이걸로 했다. 별로다. 근데 3시간 더 쓰면 달라질까. 안 달라진다.

    전문가 블로그가 아닙니다

    나는 테크 전문가가 아니다. 오디오파일이라고 하기엔 지식이 얕다. 개발은 하는데 뭐든 반쯤 아는 사람이다. 그냥 기록이다 이건. 전문가 블로그 읽고 싶으면 다른 데 가면 된다.

    AdSense 받으려면 25-30개 글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 15개. 반은 넘었다. 서버 비용이 연 $22 나온다. NAS Docker에서 WordPress 돌리는 거라 크지 않은데 그거라도 벌면 좋겠다. 안 되면. 뭐. 돈 때문에 시작한 건 아니다. 아닌 것 같다. 아닐 수도 있고. 처음 블로그 만들었을 때의 그 감각은 기억난다.

    일관성 같은 건 없다

    오늘 테크 이야기 쓰고 내일 이어폰 이야기 쓰고 모레 서하 이야기 쓴다. 일관성 없다. 관심사가 여러 개고 하나만 하면 지루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 블로그도 이 모양이다.

    5년 후에 이 글 보면 부끄러울 수도 있다. 그때도 블로그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만뒀을 수도 있다. 그것도 괜찮은 건지는 모르겠다. 괜찮다고 하고 싶은데.

    올린다

    이 글도 완벽하지 않다. 구조가 산만하다. 어떤 문단이 다른 문단이랑 안 맞는 것 같다. 고치고 싶다. “한 번만 더 읽어보고.” 안 한다. 이번엔 안 한다.

    됐다. 올린다.

  • 신디사이저 사고 싶은데 참는 중

    신디사이저 사고 싶은데 참는 중

    Digitakt II 영상을 또 봤다. 이번 주 세 번째.

    빠져드는 중

    LoopOp 채널에서 8트랙 전부 쌓아가는 영상이 있다. 킥 하나 찍는 것부터 시작한다. 필터 돌리고 LFO 걸고 리버브 태우면 드럼 패턴 하나가 숨을 쉬기 시작한다. 거기에 베이스라인 얹고 하이햇 찍고 샘플 잘라서 레이어링하면 빈 화면에서 곡이 올라온다. 15분짜리 영상인데 두 번 봤다.

    Elektron Digitakt II. 8트랙 샘플러 겸 드럼 머신. 스텝 시퀀서. 파라미터 락. 컨디션 트리거. 100만원 중반. Elektron 특유의 워크플로우가 있다. 한번 빠지면 다른 걸로 안 넘어간다고 한다. Red Means Recording도 라이브에서 메인으로 쓴다.

    후보 리스트가 늘어난다

    OP-XY. Teenage Engineering. 저 사람들은 제품을 만드는 건지 오브제를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슬림한 알루미늄 바디에 시퀀서, 신스, 이펙터가 다 들어있다. 카페에 들고 가서 비트 찍는 상상을 한다. 서하 유모차 밀면서 한 손으로 시퀀스 걸어놓는 상상도 했다. 비현실적인 건 안다.

    Octatrack MKII. 이건 다른 급이다. 라이브 샘플링. 실시간으로 외부 소스 잡아서 자르고 이펙트 걸고 루프 만드는 기계. 200만원 넘는다. Bonobo가 라이브에서 쓰는 거 봤다. 그때부터 머리에서 안 지워진다.

    아 그리고 OP-1 Field도 있는데 이건 250만원이라 생각을 안 하기로 했고, Model:Cycles는 가격은 착한데 FM 신스라 내가 원하는 거랑 좀 다르고, SP-404 MKII는 힙합 샘플러라서 방향이 다르고, Syntakt는 Digitakt이랑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둘 다 살 수는 없고, MPC Live는 터치스크린이 있어서 편한데 Elektron 워크플로우가 더 끌린다.

    이 패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맞다, 이어폰 살 때도 이랬다. 후보 리스트 만들고 비교표 만들고 리뷰 다 찾아보고. 결국 산다.

    현실 점검

    중고나라에 Digitakt II가 올라왔다. 110만원. 박스 풀셋. 사진 다섯 장 다 저장했다. 확대해서 스크래치 있나 확인했다.

    결제는 안 했다.

    GarageBand를 한 번 열었다. 한 달 전. 서하 재우고 11시쯤. 드럼 트랙 하나 깔고 신스 소리 골라서 4마디 찍었다. 30분 정도 했다. 서하가 울었다. 밤 수유 시간이었다. 분유 타러 갔다. GarageBand는 아직 그 상태로 열려 있을 거다. 아닐 수도 있다. 맥북 업데이트하면서 꺼졌을 수도.

    사봤자 먼지 쌓일 거잖아

    지오한테 뭐라고 말해야 되지. Digitakt II 사고 싶다고. 서하 기저귀값 10개월치라고. 집에 놓을 데도 마땅치 않다고. 거실 책상은 분유통이랑 이유식 도구로 가득하고 방에는 서하 침대랑 내 침대가 끝이고.

    일단 안 말한다.

    악기를 칠 줄 모른다. 음악 이론도 모른다. 유튜브 보면 독학으로 배울 수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다. 퇴근하면 서하 돌보고 재우면 밤 11시고 밤 11시에 신디사이저 켤 수는 없다. 헤드폰 꽂으면 소리 문제는 해결되지만 에너지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 서하 재우면 나도 녹초다.

    사봤자 먼지 쌓일 확률이 높다. ADHD가 그렇다. 카메라 샀다가 석 달 만에 서랍에 넣었다. 태블릿도 그랬다. 100만원 넘는 장비가 인테리어가 되는 건 좀. 또 뭔가 사고 미니멀 꿈꾸고. 이 루프를 몇 번째 돌고 있는 건지.

    그래서 오늘도

    밤 11시. 침대. 폰으로 LoopOp가 Digitakt로 테크노 만드는 영상을 본다. 중고나라 앱을 연다. 닫는다. 연다.

    서하가 크면. 그때쯤이면. 아마 그때도 이러고 있겠지.

  • 유선 이어폰 아직도 쓰는 사람

    유선 이어폰 아직도 쓰는 사람

    블루투스 왜 안 쓰냐고 자꾸 물어봐서.

    충전이 필요 없다

    배터리가 없다. 충전할 필요가 없다. 아침에 나가기 전에 이어폰 배터리 확인하고 케이스 배터리 확인하고 혹시 간밤에 충전 안 됐으면 급속충전 걸어놓고 그 시간에 나갈 준비 하고. 그런 거 안 해도 된다. 꽂으면 나온다. 10시간 비행기에서도 나온다. 밤새 듣다 잠들어도 아침에 여전히 나온다.

    압축 없는 소리

    블루투스는 SBC든 AAC든 LDAC든 결국 코덱으로 압축해서 무선으로 쏜다. 유선은 DAC에서 이어폰까지 전기 신호 그대로 간다. 차이가 크냐? 좋은 이어폰일수록 크다. 128kbps MP3랑 FLAC 구분 못 하는 귀도 있고, 그런 사람한테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음질 이야기를 좀 더 하면. Luna DAC에 N5005 꽂아서 Nils Frahm 피아노곡 들으면 피아노 해머가 현을 치는 어택이 들린다. 잔향이 방 안에서 퍼지는 게 느껴진다. 같은 곡 에어팟으로 들으면 피아노 소리가 난다. 둘 다 피아노인데 다른 악기 같다. 아 근데 에어팟 잃어버린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닌데, 에어팟은 진짜 많이 잃어버렸다. 짝퉁까지 합치면 한 다섯 개는 사라졌다. 유선은 몸에 붙어있으니까 물리적으로 잃어버리기가 어렵다. ADHD한테는 이게 꽤 크다.

    딜레이 0ms

    레이턴시. 영상 볼 때 입이랑 소리 안 맞는 거. 블루투스 쓰면 코덱에 따라 40ms에서 200ms까지 딜레이가 생긴다. 유선은 0이다. 유튜브 볼 때 입 모양이랑 대사 타이밍 안 맞으면 미묘하게 불편하다. 게임은 더 심하다. 총 쏘는데 소리가 늦게 나오면 그게 맞은 건지 아닌 건지.

    단순한 게 좋다

    케이블, 드라이버, 커넥터. 끝이다. 펌웨어 업데이트도 없고 앱 연동도 없고 블루투스 페어링 충돌도 없다. 에어팟이 맥이랑 아이폰 사이에서 자동 전환된다고 하는데 그게 안 될 때 짜증이 무선의 단점 전부를 요약한다. 유선으로 돌아간 이유가 결국 이거다.

    줄 만지작거리는 게 좋다. 이유는 없다.

    이어폰에 50만원 쓴 변명은 따로 썼다.

  • 출퇴근길 음악

    출퇴근길 음악

    7시 48분, 4호선

    7시 48분. 4호선. 자리 없다. 이어폰 꽂는다.

    서하가 6시에 깼다. 분유 타고 기저귀 갈고 안아주고. 리코 밥 주고. 전쟁 같은 아침을 지나서 지금 여기 서 있다. Luna DAC에 N5005 연결. 재생.

    이어팁이 귀를 막는다. 물리적으로. 지하철 소음이 한 겹 뒤로 밀린다. 안내방송, 기침 소리, 문 닫히는 소리. 다 멀어진다. ANC 같은 건 아니다. 그냥 실리콘이 귀를 막고 있는 거다. 배터리도 안 든다.

    아침에 맞는 소리

    피곤한 아침이다. lo-fi를 건다. 느린 비트 위에 피아노 루프. 눈이 감긴다. 한 정거장. 두 정거장.

    기분 좋은 날도 있다. 서하가 밤에 안 깨고 6시간 잔 날. Daft Punk “Around the World” 걸면 발이 박자를 탄다. Justice “Genesis” 들으면 이 지하철이 좀 다른 곳 같다. 비 오는 아침에는 재즈. 빗소리 위에 피아노가 겹친다. 이어팁 밖으로 빗소리가 아주 조금 새어 들어오는데 그게 또 괜찮다.

    mpd 셔플을 돌릴 때도 많다. 뭐가 나올지 모른다. 3천 곡 넘게 넣어놔서. 앰비언트 다음에 일렉트로닉 다음에 포크. 맥락이 없는데 아침에는 그게 맞다.

     

    오피스, 이어폰 없는 시간

    오피스. 이어폰 뺀다.

    오픈 플로어. 키보드 소리. 누가 통화하는 소리. 커피 머신 돌아가는 소리. 자판기 동전 떨어지는 소리. 30분 전까지 Nils Frahm 피아노 위에 떠 있었는데 지금은 형광등 밑에서 슬랙 알림을 받고 있다. 이어폰을 다시 끼고 싶다. 회의 시간까지 40분. 참는다. 참다가 못 참고 끼는 날도 있다. 음악 안 틀고 그냥 귀마개로. 소음 차단만으로 집중이 달라진다. 유선 IEM 이어팁이 실리콘이라 물리 차단이 확실하다. 사무실이 조용해지면 키보드 치기가 편하다.

     

    퇴근길, 다른 음악

    6시 12분. 퇴근. 다시 4호선.

    아침이랑 다른 음악이 맞다. Nils Frahm “Says”. 피아노 건반이 느리게 내려앉는다. Olafur Arnalds. 현악 위에 일렉트로닉이 얇게 깔린다. Brian Eno “Music for Airports”. 소리인지 공기인지 구분이 안 된다. DAC 하나 끼워서 듣는 거랑 폰 직접 연결해서 듣는 거랑 이런 곡에서 차이가 크다.

    창밖이 어두워진다. 건물 불빛이 지나간다. 앰비언트 위로 지하철 진동이 아주 미세하게 섞인다.

    아무것도 안 틀고 이어폰만 끼고 있는 날도 있다. 소음 차단만으로 충분한 날. 조용한 게 음악보다 나은 저녁이 있다. 하루 종일 소리에 둘러싸여 있었으니까. 서하 울음, 리코 짖음, 사무실 소음. 퇴근길 30분이 하루 중에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소리다. 아무 소리도 안 선택하는 것도 선택이다.

     

    집 앞

    10시 23분. 집 앞. 이어폰 뺀다. 갑자기 시끄럽다.

    그래도 이 루틴이 좋다. 이어폰에 50만원 쓴 게 아깝지 않은 이유가 매일 여기 있다.

  • 미니멀리즘을 동경하는 맥시멀리스트

    미니멀리즘을 동경하는 맥시멀리스트

    유튜브에서 본 일본 사람 방에 물건이 세 개다. 침대, 책상, 노트북.

    내 책상 위

    내 책상 위 물건 세 봤다. 포기했다.

    유튜브에서 본 사람은 서랍을 열면 양말이 색깔별로 접혀있다. 하나 꺼내도 나머지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나는 서랍을 열면 뭐가 나올지 모른다. 작년 크리스마스 카드, 뭔지 모르는 나사 3개, 쓰다 만 포스트잇, 어디 거인지 모르는 충전 케이블. 서랍에 넣으면 잊어버린다. 눈에 안 보이면 없는 거다. 그래서 전부 책상 위에 놔둔다.

    유튜브에서 본 사람은 케이블이 안 보인다. 책상 뒤로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벨크로 스트랩으로 묶어서 하나도 안 보인다.

    나는. CalDigit TS4 독에서 나오는 케이블, Luna DAC 전원 케이블, Luna DAC에서 앰프로 가는 케이블, 모니터 케이블, 노트북 충전기, IEM 스탠드에 걸린 U12t 케이블, N5005 케이블, USB-C 케이블 하나 근데 뭐에 쓰는 건지 모르겠다, USB-A to C 어댑터, 미니 USB 케이블 이것도 뭔지 모르겠다, 아 그리고 바닥에 하나 더 있는데 진짜 뭔지 모르겠다. 벨크로 스트랩은 있다. 샀다. 3개 중에 1개 쓰고 나머지는 서랍에 넣어서 잊어버렸다.

    유튜브에서 본 사람은 정리를 한 번 하면 유지한다. 매일 5분씩 정리하면 된다고 한다.

    나는 정리를 하면 1주일 간다. 의욕이 차오르는 날이 있다. 1시간 동안 책상 싹 치운다. 케이블 묶고 먼지 닦고 안 쓰는 거 버리고. 깔끔하다. 사진 찍는다. 다음 날 케이블 2개 추가된다. 서류 몇 장. 커피잔. 1주일이면 원래대로다. IKEA 정리함도 샀다. 1주일 잘 썼다. 지금은 안에 오래된 영수증이랑 뭔지 모르는 나사가 들어있다.

    r/battlestations 매일 본다. 모니터 하나. 키보드 하나. 마우스 하나. 나머지는 전부 보이지 않는 곳에. 조명 은은하고. 식물 하나. 이런 사진 저장해놓고 “나도 이렇게” 한다. 안 된다. Pinterest도 본다. clean desk setup 검색하면 나오는 사진들. 다 저장한다. 저장만 한다.

    디지털은 된다

    유튜브에서 본 사람은 디지털도 미니멀하고 물리도 미니멀하다.

    나는 디지털은 된다. 모든 기기가 Catppuccin Mocha 테마. MBA, MBP, Dell 전부 같은 색. Ghostty 터미널 투명도 88%. 배경 화면 살짝 비친다. 파일 구조도 나름 정돈돼 있다. 왜 디지털은 되고 물리는 안 되냐면 파일은 안 보이니까. 100개가 있어도 화면은 깨끗하다. 물건 100개는 보인다. 전부 다 보인다. (Dell에 Catppuccin 입히느라 일주일 날린 이야기가 이거다.)

    버리면 다음 주에 필요해진다

    유튜브에서 본 사람은 “필요 없는 건 버린다”고 한다.

    나는 버리면 다음 주에 필요해진다. 경험적으로. USB 케이블 버렸다가 한 달 후에 같은 거 샀다. 그래서 안 버린다. 그래서 쌓인다. 그래서 이 모양이다. (신디사이저까지 사고 싶은 걸 참는 중이다.)

    지금 이 글 쓰고 있는 책상. 왼쪽에 식은 커피. 오른쪽에 서하 기저귀 크림이 왜인지 놓여있다. 뒤에 케이블 더미. 이 상태로 r/battlestations 새 글을 보고 있다.

    미니멀리스트 안 되겠다. 미니멀리스트 유튜브는 계속 볼 것 같다.

  • Meta 안경

    Meta 안경

    Meta 안경 한국에서 쓸 수 있냐고? 공식적으로는 안 된다.

    Ray-Ban Meta Gen2. 미국에서 직구했다. 한국 출시 안 됐고, Meta 앱이 위치 확인해서 한국이면 AI 기능이랑 음성 명령을 막는다. 그냥 선글라스가 된다. 비싼 선글라스.

    근데 쓸 수 있다. 좀 귀찮지만.

    한국에서 안 된다

    정확히는, 한국 IP와 한국 GPS 좌표가 잡히면 안 된다. Meta 앱이 두 가지를 체크한다. 하나는 인터넷 IP 기반 위치. 하나는 폰 GPS 및 WiFi BSSID 기반 위치. 둘 다 우회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VPN만 쓰면 된다고 했는데 반만 맞다. IP는 VPN으로 미국으로 바꿀 수 있다. 근데 GPS가 한국이면 앱이 잡아낸다. WiFi AP의 BSSID 데이터로도 위치를 추정하기 때문에 VPN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떻게 했냐면

    미국 VPS에 WireGuard 서버를 올렸다. 월 $5. 이걸로 IP를 미국으로 돌린다. 여기까지는 보통 VPN이랑 같다.

    GPS 우회가 문제다. 메인폰에서 하기 싫어서 BlueFox NX1을 썼다. 4인치짜리 서브폰. 이미 루팅해놨다. MTKClient로 부트롬 접근해서 Magisk 깔고, Shamiko로 루팅 감지 숨기고, GPS Setter로 위치를 뉴욕으로 고정했다. 그리고 XPrivacyLua로 WiFi BSSID 정보를 Meta 앱한테 안 넘기게 차단.

    WiFi 전용이다. NX1에 유심 안 넣었다. WiFi 붙여서 WireGuard 켜고, GPS Setter 켜고, 그 상태에서 Meta 앱 실행하면 앱은 “아 미국이구나” 한다. 안경이랑 블루투스 연결하면 AI 기능 전부 열린다.

    커뮤니티에 가이드 많다. 나만 한 게 아니다. WireGuard 설정 자체는 서버 세팅부터 클라이언트 conf 파일까지 한 시간이면 되는데 — 사실 이 부분만 쓰면 글 하나 분량이다. 서버 프로비저닝하고 키 교환하고 iptables 포워딩 룰 잡고 MTU 튜닝하고 DNS leak 테스트하고. 이건 따로 쓸게.

    총 투자. 안경 $300. NX1 $200. VPS 월 $5. 시간 이틀. 합치면 $500 넘었다.

    쓸 만한가

    카메라는 폰보다 못하다. 렌즈가 작으니까 당연하다. 근데 양손이 막혀있을 때 편하긴 하다. 서하 안고 있으면서 “Hey Meta, take a photo” 하면 찍힌다. 화질은 SNS 올리기엔 충분하다. 확대하면 별로.

    “Hey Meta” 음성 명령은 조용한 데서만 쓸 만하다. 밖에서는 못 알아듣는다. 집에서 혼자 있을 때 쓴다. AI 답변은 간단한 건 되는데 복잡한 건 안 된다.

    음악. 안경 양쪽에 스피커가 달려있다. 나한테만 들리는 건 좋다. Luna DAC에 U12t 쓰는 사람한테 이걸 음악 기기라고 하면 모욕이다. 이어폰 끼는 게 낫다.

    배터리 하루. 많이 쓰면 반나절. 케이스에 넣으면 충전되는데 케이스도 충전해야 한다.

    하루에 실제로 쓰는 횟수? 한두 번. 어떤 날은 안 쓴다. 선반에 놓여있다.

    유난떤다는 비판이 있다. 맞다. $500 써서 하루에 한두 번 쓰는 선글라스. 또 샀다고 할 수밖에 없다. 가성비로 따지면 최악이다. 세팅하는 과정이 재밌긴 했다. WireGuard 올리고 루팅 우회 잡고 위치 스푸핑 테스트하고. 그 과정 자체는 즐겼다. 결과물이 $500의 가치가 있냐는 건 다른 문제다.

    취미에 따라 다르다.

    P.S. VPN 서버 유지보수 귀찮다. 가끔 죽는다. SSH 접속해서 재시작해야 한다. 폰 업데이트하면 XPrivacyLua 설정 날아가서 다시 해야 한다. 이거 유지하려면 월 $5가 아니라 월 $5 + 귀찮음이다.

  • DAC가 뭔데

    DAC가 뭔데

    DAC 샀다고 하면 다들 그게 뭐냐고 한다.

    DAC가 뭔데

    Digital to Analog Converter.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바꿔주는 기기다. 음악 파일은 0이랑 1이다. 그걸 이어폰 드라이버가 떨 수 있는 전기 신호로 바꿔야 소리가 난다. 그 변환을 하는 게 DAC.

    폰에도 들어있다. 스피커로 소리 나잖아. 근데 폰 만드는 회사들이 오디오 칩에 큰돈을 안 쓴다. 카메라 모듈, AP, 디스플레이. 거기 예산이 다 간다. DAC는 소리 나면 됐지 수준. LG가 Quad DAC라고 해서 폰에 제대로 된 오디오 칩 넣었었는데. LG가 폰을 접었다. 그 이후로 폰 내장 DAC에 신경 쓰는 메이저 브랜드가 없다.

    비유를 하나 하자면. 비싼 스피커 사놓고 벽에서 MP3를 흘려보내는 느낌이다. 아니 이건 좀 다르다. 수도꼭지를 생각하면. 정수기 물이 있는데 파이프가 녹슬었다고 해야 하나. 비유가 이상해졌다. 다시.

    그냥 폰 내장 DAC는 보급형이고 외장 DAC는 전용 장비다. 이렇게 말하는 게 정확하다.

    그래서 뭐가 다른데

    친구가 이 질문을 할 때마다 대답이 궁한다. 이어폰은 건네줄 수 있는데 DAC 차이는 같은 이어폰으로 A/B 테스트를 해봐야 안다. 그걸 길거리에서 할 수는 없고.

    내 경우. Luna DAC를 처음 연결한 날, 같은 이어폰 같은 곡인데 베이스 텍스처가 달랐다. 단단하고 윤곽이 생겼다. 보컬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온 느낌. 배경 악기들 분리가 더 됐다.

    근데 이게 플라시보일 수 있다. 10만원 넘게 주고 샀는데 안 달라지면 억울하잖아. 뇌가 알아서 좋게 해석할 수 있다. 부정은 안 하겠다.

    Luna DAC. 한국 브랜드. 10만원대 중반. 크기는 라이터만 하다. USB-C로 폰에 꽂고 이어폰 연결하면 끝. 앱 설치도 드라이버도 필요 없다. 물론 DAC 효과를 제대로 느끼려면 좋은 이어폰이 있어야 한다.

    입문은 Apple USB-C to 3.5mm 동글. 만원 좀 넘는다. 이거 사실 DAC가 들어있다. 폰 내장보다 낫다는 평이 많다. 만원짜리로 차이 느끼면 축하한다. 혹은 조의를 표한다. 돈 쓸 구멍이 하나 생긴 거다.

    가격대별 차이는 올라갈수록 줄어든다. 폰 내장이랑 5만원짜리 차이는 좀 있다. 5만원이랑 15만원 차이도 있다. 15만원이랑 100만원 차이? 있긴 한데 가격만큼은 아니다. 500만원? 나는 그 영역은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지갑이 버틸 수 없다.

    FLAC이랑 MP3 이야기도 해야 되는데. 소스가 128kbps MP3면 DAC가 아무리 좋아도 한계가 있다. FLAC이나 무손실로 들어야 DAC 차이를 제대로 느낀다. 스트리밍 서비스 고음질 요금제 쓰든가, 파일을 직접 구하든가.

    살 필요 있냐

    추천하냐고? 대부분 필요 없다. 근데 유선 이어폰으로 돌아간 나 같은 사람한테는 필수다.

  • 계획만 세우다 하루가 끝난다

    계획만 세우다 하루가 끝난다

    오늘 할 일 목록을 세 번 다시 썼다. 할 일은 하나도 안 했다.

    앱이 문제가 아닌 건 안다

    아침에 일어나서 Notion 켠다. 어제 만든 할 일 목록이 있다. 근데 뭔가 아니다. 카테고리를 다시 나눠야 할 것 같다. 우선순위도 바꿔야 할 것 같다. 태그 시스템이 마음에 안 든다. 템플릿을 새로 만들자. 한 시간 지났다.

    Notion 전에는 Apple Reminders 썼다. 그 전에는 Todoist. 그 전에는 Trello. 매번 새 앱 깔고 설정하고 템플릿 만들고 3일 쓰고 버렸다.

    앱이 문제가 아닌 건 안다.

    계획에서 도파민이 나온다

    새 프로젝트 시작할 때. 코드 한 줄 안 짜고 폴더 구조만 3시간 잡는다. 네이밍 컨벤션 정하고, README 쓰고, .gitignore 완벽하게 세팅하고. 빈 폴더 구조가 아름답다. 파일은 없다.

    계획 세우는 단계에서 도파민이 나온다. “오 이거 하면 잘 되겠다” 하는 기대감. 그 기대감이 정점이다. 실행? 지루하다. ADHD가 아빠가 되면에도 썼지만, 뇌가 이렇게 생겨먹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진짜 해야 하는 일. 근데 그거 하기 전에 계획을 좀 세워야 할 것 같다.

    – 블로그 글 쓰기 – 주제 정하기 – 주제 후보 리스트 만들기 – 카테고리별로 분류 – 카테고리 기준 정하기 – 다른 블로그 카테고리 구조 리서치 – 리서치 결과 Notion에 정리 – Notion 페이지 템플릿 먼저 만들기 – 아 Notion 말고 종이에 쓰면 다를까 – 종이 살까 – 어떤 종이가 좋지 – 무지? 줄? 도트? – 도트 노트 추천 검색 – 아 또 이러고 있다

    Netflix 켜고 뭐 볼까 30분 고르다가 끈다. 고르는 데 에너지를 다 썼다. 고른 다음에 볼 에너지가 없다.

    카페에 가면 된다. 사람들이 뭔가 하고 있으면 나도 한다. 집에 혼자 있으면 핸드폰 보다가 하루 간다. 25분 타이머 켜고 일단 시작하면 되긴 된다. 가끔.

    25분 타이머 앱을 고르는 데 40분 쓴 적 있다.

    마감 있는 건 한다. 회사 일, 세금 신고. 안 하면 큰일 나니까. 내가 정한 마감은 안 지킨다. 아무도 안 재촉하니까. 뇌가 그렇게 작동한다. 외부 압력 없으면 시작을 못 한다.

    이 글도 할 일 대신 쓴 거다

    월요일에 이 글 쓰려고 했다. 월요일에 아웃라인 만들었다. 화요일에 구조를 바꿨다. 수요일에 까먹었다. 목요일에 아웃라인을 다시 만들었다. 금요일 저녁에 아웃라인 버리고 걍 쓰는 중이다.

    이 글도 할 일 대신 쓴 거다. 목록에 ‘블로그 쓰기’ 있었는데 내일로 미뤘다. 아니 이게 블로그 글이잖아. 했잖아. 근데 목록에 체크는 안 했다. 내일 할 거다. 아마.

  • 유선 이어폰으로 돌아감

    유선 이어폰으로 돌아감

    지하철에서 이어폰 꽂는데 줄이 팔에 감긴다. 풀고 귀에 넣고 DAC에 연결하고 재생 누른다. 옆 사람이 케이블을 본다. 2026년에 유선 이어폰 쓰는 사람이 드물긴 하다.

    AirPods를 몇 번 잃어버렸는지

    AirPods를 몇 번 잃어버렸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다섯 번인가 일곱 번인가. 케이스만 잃어버린 건 안 셌다. 지하철에 두고 내리고, 카페 테이블에 놓고 가고, 헬스장 락커에 두고 가고. Find My 열면 마지막 위치가 엉뚱한 곳이다. 배터리가 죽어서 추적이 안 된다. 세 번째부터는 3만원짜리 짝퉁으로 샀다. 정품 30만원을 한 달에 한 번씩 잃어버릴 수는 없으니까. 짝퉁도 잃어버렸다.

    ADHD에 작은 무선 기기는 조합이 안 된다. 열쇠도 찾고 지갑도 찾고 이어폰까지 찾으면 출근 전에 30분이 물건 찾는 시간이다.

    서랍 뒤지다가 오래된 유선 이어폰을 발견했다. 꽂아봤다.

    잃어버릴 수가 없다. 케이블이 폰에 연결돼 있다. 귀에서 빠져도 몸 어딘가에 매달려 있다.

    집에서는 U12t, 밖에서는 N5005

    그래서 유선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는 64 Audio U12t. 12 드라이버 IEM이다. Eros S II 케이블에 Luna DAC 연결해서 듣는다. 가격은 말하기 싫은데 AirPods Pro 정품의 몇 배다. (이어폰에 50만원 쓴 사람의 변명에 자세히 썼다.) 차이가 나냐고 하면 난다. 디테일이 다르고 악기 분리가 다르고 저음 텍스처가 다르다. 한번 이쪽을 들으면 돌아가기 어렵다. 근데 이걸 말로 설명하면 아무도 이해를 못 한다. 들어봐야 아는 건데 들어볼 기회가 없으니까. “더 좋아” 말고는 할 말이 없다.

    밖에서는 AKG N5005. DragonScale 케이블로 바꿨다. 기본 케이블보다 부드럽고 잘 안 꼬인다. U12t는 너무 비싸서 밖에 들고 다니기가 무섭다. 지하철에서 사람 부딪혀서 떨어지면? 생각만 해도 식은땀.

    Arch Linux에서 easyeffects로 AutoEQ 프로필을 적용해서 듣는다. U12t용 하나, N5005용 하나. 주파수 응답을 Harman 타겟에 맞추는 건데 솔직히 차이가 미묘하다. 끄고 들어도 되는데 한번 설정해놨으니까 그냥 켜둔다. 이것도 세팅하는 데 반나절 걸렸다. 세팅이 끝나면 만족감이 오고, 그 만족감이 사라지면 다른 걸 세팅하고 싶어진다. DAC도 마찬가지다. (DAC가 뭔데에서 좀 더 썼다.)

    유선의 단점은 안다. 케이블 꼬이고 주머니에서 엉키고 문 손잡이에 걸리면 귀에서 뽑힌다. 통화할 때 케이블 마이크가 입에서 멀어서 상대방이 잘 안 들린다고 한다. 운동할 때 케이블이 흔들린다. 헬스장 갈 때는 싸구려 블루투스 이어폰 쓴다.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거.

    근데 아침에 이어폰 찾을 필요가 없다. 배터리 확인 안 해도 된다. 비행기에서 열 시간 음악 틀어도 안 꺼진다.

    줄 있는 게 좋다

    줄 있는 게 좋다. 왜 아직도 유선 이어폰을 쓰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많은데, 그 이야기는 따로 썼다.

  • 이어폰에 50만원 쓴 사람의 변명

    이어폰에 50만원 쓴 사람의 변명

    변명 아니고 설명이다. 아닌가. 변명일 수도.

    64 Audio U12t. 12개 BA 드라이버가 들어간 커스텀 IEM. 여기에 Effect Audio Eros S II 케이블. 그리고 Luna DAC. 다 합치면 얼마냐고? 안 말한다. 카드 명세서는 내가 관리한다. (DAC가 뭔데 싶으면 거기 썼다.)

    3만원짜리에서 시작했다

    근데 사실은. 3만원짜리 에어팟 짝퉁에서 시작한 사람이다. 잃어버려서 싼 거 사고, 잃어버려서 또 사고, ADHD에 무선 이어폰은 안 맞겠다 싶어서 유선으로 넘어왔다. 처음에는 동네 이어폰 가게에서 5만원짜리 샀다.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Head-Fi를 열었다. Reddit r/headphones를 열었다. 거기서부터 잘못됐다.

    BA 드라이버라는 게 있다. Balanced Armature. 원래 보청기 기술이었는데 오디오쪽으로 넘어온 거다. 싱글 BA에서 시작해서 듀얼, 트리플, 쿼드, 그리고 지금은 12드라이버까지 나온다. 각 드라이버가 다른 주파수 대역을 담당하는데 초기 BA는 저음이 약해서 다이나믹 드라이버랑 하이브리드로 조합하기 시작했고 거기서 크로스오버 설계가 중요해지면서 — 이건 너무 길었다. 어쨌든 소리가 좋다는 말이다.

    U12t 처음 꽂은 날

    같은 노래인데 악기가 이렇게 많았나. 보컬 뒤에 깔린 패드 소리가 들리고, 베이스에 텍스처가 있고, 심벌이 공기 중에서 퍼지는 게 느껴졌다. 3만원짜리에서는 그냥 뭉개진 소리 덩어리였던 게 레이어가 갈라졌다.

    친구들은 차라리 고기 먹자고 했다. 이어폰 하나에 소고기 몇 번을 먹냐고. 맞는 말이다. 근데 소고기는 먹으면 없어지잖아. 이어폰은 남아있다. 이건 좀 궁색한 논리인 거 안다.

    지오가 카드 내역 보고 뭐라 했는데 정확히 뭐라 했는지는 안 적겠다.

    케이블도 바꿨다. Eros S II. 케이블 바꾸면 소리가 달라진다는 말, 반은 맞고 반은 플라시보다. 근데 플라시보여도 내 귀에 좋으면 그만 아닌가. 이것도 좀 궁색하다. 알고 있다.

    외출할 때는 AKG N5005에 DragonScale 케이블 끼고 나간다. U12t는 밖에 들고 다니기가 무섭다. 지하철에서 떨어뜨리면? 생각만 해도 식은땀 난다. N5005도 비교 안 하면 충분히 좋다. 문제는 비교를 이미 해버렸다는 거지.

    Arch Linux 터미널에서 mpd 돌리고 ncmpcpp 비주얼라이저 켜놓고 U12t로 듣는 밤이 있다. 서하 재우고 리코도 잠들고, 어두운 방에서 터미널 막대기가 주파수 따라 춤추는 걸 보면서. 이건 설명이 안 된다. 소리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고 하면 오타쿠 같은데 진짜 그렇다.

    합리화일 수 있다

    이 모든 게 합리화일 수 있다. 비싼 거 사면 좋은 이유를 억지로 만들게 되니까. 인간의 뇌가 원래 그렇다고 어디서 읽었다. 인지부조화 감소. 뭐 그런 거.

    근데 매일 아침 이어폰 꽂고 재생 버튼 누르면 그 소리가 나온다. 매일이다. 1년 넘게 매일. 하루도 안 빠지고. 질리지 않았다.

    후회 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