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 이어폰으로 돌아감

유선 이어폰으로 돌아감 featured 36 rotated

지하철에서 이어폰 꽂는데 줄이 팔에 감긴다. 풀고 귀에 넣고 DAC에 연결하고 재생 누른다. 옆 사람이 케이블을 본다. 2026년에 유선 이어폰 쓰는 사람이 드물긴 하다.

AirPods를 몇 번 잃어버렸는지

AirPods를 몇 번 잃어버렸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다섯 번인가 일곱 번인가. 케이스만 잃어버린 건 안 셌다. 지하철에 두고 내리고, 카페 테이블에 놓고 가고, 헬스장 락커에 두고 가고. Find My 열면 마지막 위치가 엉뚱한 곳이다. 배터리가 죽어서 추적이 안 된다. 세 번째부터는 3만원짜리 짝퉁으로 샀다. 정품 30만원을 한 달에 한 번씩 잃어버릴 수는 없으니까. 짝퉁도 잃어버렸다.

ADHD에 작은 무선 기기는 조합이 안 된다. 열쇠도 찾고 지갑도 찾고 이어폰까지 찾으면 출근 전에 30분이 물건 찾는 시간이다.

서랍 뒤지다가 오래된 유선 이어폰을 발견했다. 꽂아봤다.

잃어버릴 수가 없다. 케이블이 폰에 연결돼 있다. 귀에서 빠져도 몸 어딘가에 매달려 있다.

집에서는 U12t, 밖에서는 N5005

그래서 유선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는 64 Audio U12t. 12 드라이버 IEM이다. Eros S II 케이블에 Luna DAC 연결해서 듣는다. 가격은 말하기 싫은데 AirPods Pro 정품의 몇 배다. (이어폰에 50만원 쓴 사람의 변명에 자세히 썼다.) 차이가 나냐고 하면 난다. 디테일이 다르고 악기 분리가 다르고 저음 텍스처가 다르다. 한번 이쪽을 들으면 돌아가기 어렵다. 근데 이걸 말로 설명하면 아무도 이해를 못 한다. 들어봐야 아는 건데 들어볼 기회가 없으니까. “더 좋아” 말고는 할 말이 없다.

밖에서는 AKG N5005. DragonScale 케이블로 바꿨다. 기본 케이블보다 부드럽고 잘 안 꼬인다. U12t는 너무 비싸서 밖에 들고 다니기가 무섭다. 지하철에서 사람 부딪혀서 떨어지면? 생각만 해도 식은땀.

Arch Linux에서 easyeffects로 AutoEQ 프로필을 적용해서 듣는다. U12t용 하나, N5005용 하나. 주파수 응답을 Harman 타겟에 맞추는 건데 솔직히 차이가 미묘하다. 끄고 들어도 되는데 한번 설정해놨으니까 그냥 켜둔다. 이것도 세팅하는 데 반나절 걸렸다. 세팅이 끝나면 만족감이 오고, 그 만족감이 사라지면 다른 걸 세팅하고 싶어진다. DAC도 마찬가지다. (DAC가 뭔데에서 좀 더 썼다.)

유선의 단점은 안다. 케이블 꼬이고 주머니에서 엉키고 문 손잡이에 걸리면 귀에서 뽑힌다. 통화할 때 케이블 마이크가 입에서 멀어서 상대방이 잘 안 들린다고 한다. 운동할 때 케이블이 흔들린다. 헬스장 갈 때는 싸구려 블루투스 이어폰 쓴다.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거.

근데 아침에 이어폰 찾을 필요가 없다. 배터리 확인 안 해도 된다. 비행기에서 열 시간 음악 틀어도 안 꺼진다.

줄 있는 게 좋다

줄 있는 게 좋다. 왜 아직도 유선 이어폰을 쓰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많은데, 그 이야기는 따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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