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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퇴근길 음악

    7시 48분, 4호선

    7시 48분. 4호선. 자리 없다. 이어폰 꽂는다.

    서하가 6시에 깼다. 분유 타고 기저귀 갈고 안아주고. 리코 밥 주고. 전쟁 같은 아침을 지나서 지금 여기 서 있다. Luna DAC에 N5005 연결. 재생.

    이어팁이 귀를 막는다. 물리적으로. 지하철 소음이 한 겹 뒤로 밀린다. 안내방송, 기침 소리, 문 닫히는 소리. 다 멀어진다. ANC 같은 건 아니다. 그냥 실리콘이 귀를 막고 있는 거다. 배터리도 안 든다.

    아침에 맞는 소리

    피곤한 아침이다. lo-fi를 건다. 느린 비트 위에 피아노 루프. 눈이 감긴다. 한 정거장. 두 정거장.

    기분 좋은 날도 있다. 서하가 밤에 안 깨고 6시간 잔 날. Daft Punk “Around the World” 걸면 발이 박자를 탄다. Justice “Genesis” 들으면 이 지하철이 좀 다른 곳 같다. 비 오는 아침에는 재즈. 빗소리 위에 피아노가 겹친다. 이어팁 밖으로 빗소리가 아주 조금 새어 들어오는데 그게 또 괜찮다.

    mpd 셔플을 돌릴 때도 많다. 뭐가 나올지 모른다. 3천 곡 넘게 넣어놔서. 앰비언트 다음에 일렉트로닉 다음에 포크. 맥락이 없는데 아침에는 그게 맞다.

     

    오피스, 이어폰 없는 시간

    오피스. 이어폰 뺀다.

    오픈 플로어. 키보드 소리. 누가 통화하는 소리. 커피 머신 돌아가는 소리. 자판기 동전 떨어지는 소리. 30분 전까지 Nils Frahm 피아노 위에 떠 있었는데 지금은 형광등 밑에서 슬랙 알림을 받고 있다. 이어폰을 다시 끼고 싶다. 회의 시간까지 40분. 참는다. 참다가 못 참고 끼는 날도 있다. 음악 안 틀고 그냥 귀마개로. 소음 차단만으로 집중이 달라진다. 유선 IEM 이어팁이 실리콘이라 물리 차단이 확실하다. 사무실이 조용해지면 키보드 치기가 편하다.

     

    퇴근길, 다른 음악

    6시 12분. 퇴근. 다시 4호선.

    아침이랑 다른 음악이 맞다. Nils Frahm “Says”. 피아노 건반이 느리게 내려앉는다. Olafur Arnalds. 현악 위에 일렉트로닉이 얇게 깔린다. Brian Eno “Music for Airports”. 소리인지 공기인지 구분이 안 된다. DAC 하나 끼워서 듣는 거랑 폰 직접 연결해서 듣는 거랑 이런 곡에서 차이가 크다.

    창밖이 어두워진다. 건물 불빛이 지나간다. 앰비언트 위로 지하철 진동이 아주 미세하게 섞인다.

    아무것도 안 틀고 이어폰만 끼고 있는 날도 있다. 소음 차단만으로 충분한 날. 조용한 게 음악보다 나은 저녁이 있다. 하루 종일 소리에 둘러싸여 있었으니까. 서하 울음, 리코 짖음, 사무실 소음. 퇴근길 30분이 하루 중에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소리다. 아무 소리도 안 선택하는 것도 선택이다.

     

    집 앞

    10시 23분. 집 앞. 이어폰 뺀다. 갑자기 시끄럽다.

    그래도 이 루틴이 좋다. 이어폰에 50만원 쓴 게 아깝지 않은 이유가 매일 여기 있다.